다음의 3가지가 깊이 있게 분석되고 고려되어야 합니다.
①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의 목회방침,
② 우리 교회 성도들의 수준과 필요,
③ 우리 교회 찬양팀의 수준과 능력 입니다.
이 세 가지를 놓치지 않으면서, 그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다스리시며 인도하시는 방법은 시대, 문화, 민족,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찬양팀들의 본질은 회중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음악을 만드는 것은 둘째입니다.
무조건 찬양팀들은 회중들이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임재앞에 자연스럽게 나가도록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옆으로 비켜 서는 것입니다.
명화를 전시하는 전시장에서 안내원이 할 일은 그림옆으로 비켜서서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막아서지 않는 찬양팀,
회중들을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신경 쓰이게 하지 않는 찬양팀
인도해야 할 찬양팀이 오히려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교회안에서 찬양사역을 하는 모든 찬양팀들은 숙지하고 또 숙지해도 부족한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교회의 찬양팀들이, 유명한 어떤 교회의 찬양사역의 Form과 방법을 그대로
모방한다고 해서 절대로 그와 같은 색깔을 낼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위의 세 가지를 제대로 고려하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은 바로 그 교회에 역사하십니다.
소위 모델이 되는 몇몇 교회와 전혀 다른 모양과 방법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1. 찬양팀원의 자격
1) 영성 -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가진 자
구원의 확신과 기복이 적은 신앙을 가진 사람을 세워야 한다.
낙엽만 떨어져도 기분이 우울해 지는 사람을 앞에 세워서 온 회중이 그 사람의 기분과
상태를 보게 하지 말라.
아울러 교회의 권위와 세워진 리더쉽에 대한 순종이 있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교회라는 상황과 사역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담임목회자와 담당목회자 (또는 담당자)의 권위에 순종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이 있어야 한다.
2) 음악성 - 기능에 따른 기본적인 (은사)가 있는 자
은사가 없으면 본인도 힘들고 팀도 힘들고 회중도 힘들다.
탁월하진 못해도 심하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기본은사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3) 인격 - 성숙한 (인격)을 가진 자
인격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가장 중요한 통로이며 팀웍의 기초이고 사역의 뿌리가 된다.
아무리 신앙이 좋아 보여도 그 뿌리인 인격이 얕으면 금새 바닥이 드러난다.
아무리 은사가 많아도 인격이 뒷받침되어 지지 않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소리나는 징일 뿐이다.
인격은 모든 사역자들의 기본이자 근본이다.
그리고 그 인격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드러나야 한다.
겸손과 온유함, 친절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진리와 타협하지 않는 그런 인격이 있어야 한다.
4) 관계성 - 회중들에게 (인정)받는 자
누구나 다 아는 죄와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뽑지 마라.
찬양시간 내내 회중들은 쳐다보기 싫은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쓸데없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회중들이 그 사람의 인격과 삶, 신앙과 성품을 인정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인도하는 찬양시간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5) 외모 - 거부감없는 (외모)를 가진 자
- 찬양팀원은 설교자 다음으로 가장 오랫동안 회중들에게 드러나는 자리이다.
외모나 옷차림, 표정이나 전반적인 외모도 거부감없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잘 생기고 못 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라, 표정과 인상의 문제인 것이다.
인상이 좋은 사람, 표정이 좋은 사람이 훨씬 효과적인 찬양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아울러, 옷차림이나 외형적인 스타일이 너무 눈에 튀어서 회중들의 시선을 가끔씩
뺏어서도 안된다.
2. 찬양팀 연습 시간
1)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라.
- 찬양팀의 모임시간에 무엇을 주로 하는 가를 보면 그 팀이 어떤 것에 중심을 두는
팀인가 알 수 있다.
밥 소르기는 그의 책 “찬양으로 가슴벅찬 예배”에서 다섯 가지를 말한다.
“ 찬양과 경배 - 성경공부(세미나) - 토론(feedback) - 기도 - 음악 연습 ”
이런 우선 순위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가장 눈에 띄고 단시간에 효과가 드러나는
음악연습의 비중이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우선순위를 포기하는 순간 콘서트 팀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음악연습, 중요하다.
그러나 음악을 잘하는 팀보다 찬양과 예배를 알고 인도하는 팀을 통해서 능력과
생명이 흐른다.
악기 연주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악기연주자들도 먼저 예배자로써 훈련받고
준비되지 않으면 한 공동체 영성과 예배사역의 균형을 깨는 일등공신들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싱어들도 마찬가지죠. 무대병 이거 무섭습니다. 한 번 걸리면 헤어나오기 힘이든다.
모임시간의 내용과 질은 그 팀의 사역과 열매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2) 연습이 더 깊고 자유로운 예배가 되게 하라.
- 끊어야 할 곳은 끊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연습이 몇 번의 리허설이 되게 하라.
- 전주나 간주 후주, 코드 정리, 음정 맞추기, 박자 맞추기 등의 기본 점검 사항이 끝나면
연습이 예배가 되게 해야 한다.
- 콘티에 없는 쉬운 곡들을 넣어서 연습함으로 긴장을 주고, 악보에 얽메이지 않게 한다.
3. 찬양팀 사역을 방해하는 것들
1) 정죄감
늘 앞에서 찬양과 예배를 인도하는 입장에 있는 찬양팀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중
하나는 정죄감입니다.
찬양과 예배를 인도하는 예배자의 입장에 설 때, 마귀는
‘너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없어,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아니냐?
너 자신을 봐라. 너의 행위를 봐라. 너의 성품을 봐라’ 하면서
팀원들에게 정죄감을 심어주거나 사람들의 죄를 고발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마귀의 이름을 ‘참소하는 자’라 하지 않았습니까?
특히 영적인 리더쉽을 가져야 할 찬양팀 들에게는 더합니다.
‘네가 영혼들을 이끌어 간다고 하면서 너는 이렇지 않느냐?’
할 때 자칫 기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용기를 상실해 버립니다.
정죄감에 사로잡히고 좌절에 빠져 예배드릴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실 때입니다.
행실과 열매로는 아무도 하나님앞에 나갈 수 없고,
더욱이 찬양과 예배를 인도한다는 것은 꿈도 못꾸는 일입니다.
한 두 번쯤은 팀원들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 경험을 해 보셨을 겁니다.
“ 오늘은 앞에 서지 않을께요, 오늘은 앉아서 예배에 집중하고 싶어요.
지금은 앞에서 찬양을 할 수 없는 기분이예요,
기도생활도 않하고, 말씀도 않일고, QT도 않하고....
도저히 이런 가식적인 모습으로 성도들앞에서 은혜스러운 척!
은혜받은 척! 찬양한다는 건 제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어요! 집사님, 전도사님,
목사님 이해해주세요.
앉아서 은혜를 받을께요...“
어찌 들으면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누가 찬양을 인도할 수 있으며, 누가 예배를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찬양은 의무입니다.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서 드릴 수 있고 않드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그런 무거움과 어려움을 가득않고 있는 회중들을
하나님앞으로 인도해야 할 찬양팀들이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그 찬양과 예배시간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질 수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 나는 하나님께 나아갈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어린 양의 피로 나를 의롭게 하셨기에 나는 예수께서 나를 위해 이루어 놓으신
그 공로를 의지하여 아버지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라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이란 감정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나에게 “네가 내 앞에 나아올 때는 이러이러하게 나오라”고
말씀하신 것을 의지하면서,
나의 상태에 관계없이 어린 양이신 예수의 흘리신 피를 의지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2) ‘나도 모르는 은혜, 아는 척 말라 / 나도 못 받은 은혜, 받은 척 말라’
저는 찬양사역하는 찬양팀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입니다.
“너도 모르는 사실 아는 척 하지 마라, 받지 않은 은혜 받은 척 하지 마라!”
저는 특히 준비모임 시간에 이런 말을 자주합니다.
찬양팀들은 준비모임시간에 함께 기도하고 예배하고, 연습하면서
이미 그 주간의 찬양인도할 곡에서 흠뻑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연습시간에 찬양을 연습하면서 악보나 뒤적이면서 팔짱을 끼고
“음~~ 좋은 곡이군, 회중들이 은혜 좀 받겠는걸....”
하는 것으로만 끝이 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찬양팀들안에 깊은 찬양과 예배가 없이 회중들과 함께 깊은 찬양과 예배를 인도하는 것은
심각하게 되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되지 못함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 사랑하기> 플로이드 맥클랑, 제4장 중
" 하나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거나 악을 행할 때에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됨은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의 태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용납하고 우리와 의견이 불일치하는 사람을
더 낫게 여기고,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우리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순복하고,
우리를 지도하는 사람들을 신뢰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찾아가고,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와, 사랑과 하나됨을 방해하는
우리의 죄에 대한 깊은 계시를 보여 달라고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삶의 심판관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를 판단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 통회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완악하고 비판적이 될 때
우리는 하나되는 것에 대한 열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 에배소서 4장과 고린도전서 12장, 로마서 12장등의 말씀을 살펴보면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지체인 교회와의 관계, 그리고 그 지체들이 각자의
역할과 양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한 몸임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98년 여름 서울 광림교회에서 주일찬양예배를 인도하는 유다지파를 처음
맡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했던 작업은 음악적인 연습이나 준비가 아니라
바로 이 "하나됨"의 말씀과 삶을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어두컴컴한 본당에서 첫 연습모임을 인도할 때 주신 마음이 있습니다.
한 그림을 떠오르게 해 주셨는데 하나된 몸을 이루는 지체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가자고 말씀하시면
눈은 앞을 향하고,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며, 몸통도 똑바로 정면을
향해야 합니다.
손과 발은 서로 잘 어울리게 조화를 이루면서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가자고 하시는데,
왼쪽발이 나는 옆으로 가야한다며 왼쪽으로 계속해서 발길질을 하고 있는 모
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공동체의 하나됨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알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연합할 수 있는 첫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팀이나 어느 집단도 예외 없이 그 공동체에서 제일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성경안에서 은혜와 계시안에서 그 공동체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일입니다.
그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는 일을 하지 않는
공동체는 자칫 다른 길로 가거나, 한 방향으로 힘을 합쳐 나아갈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찬양팀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음악적인 연습이나 기술적인 부분에 마음을 빼앗기고
잠잠히 말씀속에서 음성듣기를 포기해 버린 팀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익히며 성도들과 함께 찬양을 인도하며 한 주 한 주
나아갈 수 있지만, 1년이 지나면 한 두 명씩 지쳐 낙오되기 시작하고,
찬양을 드려도 왠지 타성에 젖어가는 자신과 공동체를 발견한다면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 일의 시작이 어디인지?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이런 물음에 대하여 확실히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그 분의 말씀에만 순종하고 있습니까?
4)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야!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인도자를 비롯한 모든 팀원들은 어느 누구라도 꼭 필요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 사람이 없으면 큰일난다....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찬양팀의 멤버들은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세움받은 사람들이므로
하나님께서 팀을 사용하시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있는 자리에 겸손히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정체성이 무너지는 영역은 오래된 단원들에게서 흔히 나타납니다.
내 자리가 굳어지고 팀안에서, 교회안에서 그 위상이 높아지면
자신도 모르게 팀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꼭 필요한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 인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의 Key를 쥐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고 그 자리를 순종하며 지키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그럴 때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4. 헤만과 다윗을 통해 본 찬양사역자들의 균형
전 얼마전에 말씀을 보다가, 그 동안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던 한 인물을 발견했습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면서, 직책을 맡기는 말씀들이 나오는 역대상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중에 헤만이라는 사람을 소개하는 부분을 찾아보니까
대상 15:19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대상 25:1 다윗이 군대 장관들로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대상 25:5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왕의 선견자라....
15장 19절에서 헤만은 먼저 노래하는 자이고 또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라고 합니다.
25장 1절에서 헤만은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는 자라고 합니다.
25장 5절에서 헤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왕의 선견자라고 합니다.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전문 음악인인데
이 헤만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왕의 선견자라고 합니다.
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왕의 선견자라는 뜻은
단순히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역할뿐 아니라, 말씀을 받고 나누는 역할도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그동안 찬양사역을 하면서 생각만 해왔던 균형잡힌 찬양사역자의 모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