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의 책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읽었다. 오바마가 채 한 살이 되기 전에 아프리카로 떠나 버린 아버지, 그가 오바마의 생애에 남겨 준 것이라고는 검은 피부 하나뿐인 것 같았다. 백인 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하얀 피부의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검은 피부를 갖고 자라나는 오바마의 생애는 진정으로 고통과 방황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는 그 검은 색의 피부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싶었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그 검은 색으로 그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억압하였다. 그는 방황했고 실의에 차서 자포자기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끝내 그는 그것을 극복해 냈다.
그가 그 완강한 '색깔'의 결박을 풀고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을 해서 자신의 고향 아프리카의 케냐를 찾았을 때 아버지가 남긴 것이 검은 색깔의 피부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꿈'이었다. 그 꿈은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의 꿈이었고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꿈이었으며, 온 인류가 그토록 갈망하는 원초적인 꿈이었다. 동시에 오바마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억압을 거세게 뿌리치고 극복하게 하는 힘이었던 것을 깨닫는다.
그 꿈은 탁월한 역량을 향한 꿈이었다. 아프리카 케냐의 원시 마을에서 자라난 그의 할아버지 오바마는 그의 부족 중에서 가장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백인들의 요리사가 되었고 많은 돈을 벌어 넓은 땅을 사고 큰 집을 지었다. 그 할아버지에게서 자라난 아버지 오바마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아랍인 가게에 점원으로 들어갔으나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었기에 미국에 유학하고 하버드의 대학원까지 나온 후 자신의 나라 케냐에 돌아가 고급 관리가 되었다. 탁월한 역량으로 위대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꿈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 아버지로부터의 꿈은 가족에 대한 꿈이었다. 번창하는 가족, 자랑스러운 가정, 화목한 일가, 그리고 그 가족 안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가장으로서의 꿈이었다. 그의 조상들은 여러 명의 아내를 얻었고 탁월한 남자의 특권으로서 가부장적 권위와 집중된 관심을 받으며 살아갔다. 아버지 오바마는 한 명의 흑인 아내와 두 명의 백인 아내로부터 다섯 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 아내들 하나하나가 대단한 역량과 지성,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신여성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꿈은 민족과 사회에 대한 꿈이었다. 번영하는 민족, 밝은 미래를 향하여 변화하는 동족과 그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로서 기여하는 꿈 말이다. 그는 진정으로 그러한 일을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가난하고 무지한 동족의 고통스런 현실을 탈바꿈시켜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멋있는 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결국 무참히 실패하고 좌절되었다. 한때는 성공하는 것 같았으나 곧 노쇠하고 모든 지위를 잃고 술에 찌들어 가족들을 괴롭히다가 아내에게 버림 받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명패조차 없는 시멘트 관 속에 묻히고 말았다.
오바마는 그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오랫동안 오열한다. 그의 오열하는 장면에서 나도 함께 오열한다. 그 꿈이야말로 내 안에서도 꿈틀거리며 역동하는 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이야 말로 나에게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이었던 것이다.
오바마는 그 꿈을 대통령이 되어 이루고자 하였다.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그 꿈을 성취하게 할 것이라고 그 자신은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못내 의심스럽다.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지만, 그 꿈은 아직도 꿈일 뿐이다. 그는 무척 위대한 것 같지만 전임 대통령이 걸어가던 길을 또다시 걷고 있다. 호언장담하던 종전은 오리무중이고 약자들의 경제적인 개선도 그리 탐탁지 않다. 그토록 기대했던 북미 관계도 별 차이가 없다. 그가 일하면서 세상이 바뀐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성급한 것 같지만 기대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꿈을 이루고자 한다. 그래서 그 꿈까지도 하나님께 내려놓고자 한다. 탁월한 역량도, 가족에 대한 환상도, 민족과 사회에 대한 이상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따르고자 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은 내려놓음이었다.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거칠고 메마른 광야를 향하여 걸어가며,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다니다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그 본향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포기한다. 아니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단지 꿈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단호하게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붙잡는다. 그리고 단지 그것만을 위해서 살고자 한다. 최선을 다해서. 그러면 하나님은 그 꿈에 대하여도 다루실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며, 그것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께서만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2009.12.31.뉴스앤조이/유장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