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성은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성은 원래 일본 역사상 위대한 장군중의 한 사람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그는 초라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상에서 그 만큼 단기간에 출세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지금까지 오사카의 상징으로 여전히 서 있는 오사카성처럼 위대한 성을 남긴 사람도 드물 것이다.
오사카성은 원래 중세 일본의 3대 장군 중 한 사람이자 일본을 통일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에 의해 지어졌다. 1583년, 이시야마혼간지 절의 옛터에서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사원은 스님들의 거점이었으나, 중세 3대 장군 중 한 사람이자 히데요시의 주군이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1534-1582)와의 전투에서 화재로 소실되었다. 히데요시는 오사카성을 그의 지배하에 새롭게 통일된 일본의 중심이 되게 할 생각 이었다.
성의 천수각과 망루등을 완성 하는 데에 약60,000명의 노역자들이 동원되었으며, 일년 반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자신을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라고 선언했던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아즈치성을 모델로 성을 만들었으나, 거기에 자신의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에 화려함과 웅장함을 더해서 축조 하였다. 수 천대 이상의 배를 통해 막대한 양의 바위들이 전국 각지로부터 성으로 운반 되었다. 가장 안쪽의 궁전은 금과 은으로 꾸며졌으며, 귀중한 보물들이 천수각의 각층에 진열되었다.
1598년 히데요시가 죽을때까지 15년간 성은 계속 축조되고 확장되었으며, 한층 더 강하고 호화스럽게 변해갔다. 그리고 주위의 모든 시설들도 함께 성장하고 확장되었다. 권력이 성으로부터 사방으로 뻗어나갔고, 또한 성 주위에 모든 것이 집중된 강력한 봉건군주의 저택을 중심으로 정치, 군사, 경제 그리고 문화적 중심지로서 근세 성의 선구가 되었다.
히데요시가 죽은 뒤 2년 후 일본 역사를 바꾸는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났다. 전쟁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1542-1616)의 승리로 끝났다. 이에야스는 자신의 지배하에 전국을 통일하는데 성공했던 3번째 중세 장군이었으며, 에도(지금의 동경)를 기반으로 260년간 계속된 도쿠가와 정권인 에도 막부를 설립했다. 1615년에는 도쿠가와의 군대가 오사카성을 공격, 파괴했으며, 이로 인해 도요토미 가문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오사카성은 그 후 도쿠가와 정권에 의해 재건되었으며, 그는 벽은 전보다「2배높게」, 해자는「2배깊게」만들어 졌다. 그러나 1660년 재건 후 40년도 채 못되어 화약고 중 한 곳이 번개로 인해 폭발되면서 성의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5년 후인 1665년 천수각이 번개로 인해 전소되었다. 약 100년 후인 1783년에 또 다시 번개를 맞았지만 성이 지니고 있던 예전의 화려함은 이미 대부분 소실되어 있었다.
19 세기 중반 도쿠가와 정권은 천수각을 제외한 성의 모든 건물들을 재건하기 위해 오사카와 주위 도시 사람들에게 강제적으로 기부하게 하여 충분한 자금을 모았다. 하지만 성은 오사카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1920년 재건 될 때까지 완전하게 재건되지 않았다. 성의 역사에서 3번째 천수각[天守閣]이 1931년 11월 7일에 완성되었으며, 높이는 지상 55미터에 달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오사카성의 천수각은 수 많은 폭격을 견디어 냈지만, 성의 대부분은 소실되었다. 게다가 1950년에 이 지역을 강타한 태풍에 의해 폐허가 되었지만 천수각만은 살아있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에 많은 부분들이 노후 되었고, 이로 인해 1995년 성의 대보수 공사가 진행되었다. 공사의 목적은 성의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 이전의 영광을 되찾고, 성을 정비하여 오사카의 상징으로 하기 위함이었다.
이 공사에는 첨단기술과 정밀도가 요구되었고 상당한 인내심도 필요했다. 50, 000개가 넘는 기와가 벗겨지고, 벗겨진 기와의 80%가 깨끗하게 수리되어 다시 지붕위에 올려졌다. 처마의 모든 금박 또한 깨끗하게 수리되었다.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운 곳에는 집중적인 방수 처리가 이루어졌다. 외벽은 다시 칠해졌고 장식부분이 보수 되었으며 금박이 전체적으로 다시 입혀졌다. 이 보수공사로 깨끗한 흰벽과 빛나는 황금 악센트가 조화를 이룬 성의 옛 모습이 되살아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