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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미나미(南) (2) 상점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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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미나미(南) 상권(商圈)에는 여러 상가가 있는데 돌아다녀 보면(지칠 때까지 끊임없이 걸어도 아직도 못 본 데가 있을 정도로 크고 넓다) 나름대로 특색을 가지고 있어서 별다른 목적 없이 구경하면서 즐길 수 있다. 시내 구경은 대개 지하철 1호선인 미도스지센(御堂筋線)의 유명한 역인 신사이바시(心齋橋)에서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東西지역, 그리고 남쪽의 난바(難波)까지 골목골목 다리가 아플 정도로 다니다 보면, 우리에게는 외국이기 때문에 신기하면서 사고 싶은 물건도 엄청 많고 먹고 싶은 음식도 왜 그리 많은 지... 또한 '상업 도시'라는 오사카의 진면모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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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이바시 역에서부터 주로 다닌 상가들을 하나씩 이야기 해 보면, 지하철에서 바로 연결되는 상가가 앞 글에서 이야기한 크리스타나가호리(クリスタ長堀)이다. 전혀 지하 상가 같지 않게 환기가 잘 되고 전체 인테리어도 깔끔해서 쇼핑하기에 쾌적한 곳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걸린 안내판에는 한국어도 쓰여있어서 관광객들이 편하다. 그러나 상점 물건들은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다. 백화점과 같은 분위기를 내려고 하니 비쌀 수밖에... 이 지하에서 올라가면 지상 1층에 토큐한즈(東急ハンズ,hands)라는 잡화점이 있다. 정말 잡화점이라는 말이 실감 나게, 사는 데 필요한 물건들이 이 한 건물에 가득 진열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엇인가를 사려면 여기저기 있는 상점이나 상가에 가야하는데 여기서는 그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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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이름만 다른 이런 류의 잡화점, 또는 홈 센타가 있어서 쇼핑하는 즐거움과 편리함이 좋다. 우리나라에도 삼성플라자에 가보니 '홈 데코'라는 매장이 있기는 한데 아직도 상품수로는 토큐한즈를 따라가지 못한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다고나 할까. 그리고 어딘가 분위기가 토큐한즈와 비슷해서(토큐한즈의 이미지 기본 칼라인 짙은 녹색을 사용하고 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무슨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 토큐한즈의 물건들을 보노라면, 일본도 소비자의 기호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상품의 새로운 개발이나 유통단계, 포장 방법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손님을 끌려고 애쓰는 단계가 아니라 손님이 자기 발로 찾아오게끔 확실한 상품력을 갖추는 것만이 경쟁 체제에서 살아남는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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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이바시스지. 보이는 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난바가 나온다. 사진에 아줌마들이 몰려있는 곳이 타치키치라는 그릇 가게 앞이다. 사람들이 많아서 들어가기가 어려워 밖에서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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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일본은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 아니라 확실히 소비자 중심의 시장이 된 것이다. 여기를 나와서 신사이바시스지 상점가(心齋橋筋 商店街)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길을 따라 걷게 된다. 길 위에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지붕을 만들어 놓아서 비 오는 날에도 다니기가 좋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전통적인 상점들로 번화했던 곳이라 백화점(다이마루와 소고, 大丸, そごう)도 두 곳이나 있고, 토쿄(東京)에서도 유명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상점들이 있지만 3년 동안 내가 즐겨 간 곳은 백화점을 제외하고 타치키치(たち吉)라는 그릇 가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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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치키치 가게의 깔끔한 내부. 그러나 세일 때는 북새통이 되어 사람들로 미여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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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교토(京都)에 본사를 둔 도자기 전문점으로 일본의 전통적인 도자기 그릇도 있지만'아담과 이브'라는 브랜드로 서양식 그릇도 판다.일본어도 잘 모르던 1997년 2월 아는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일 년에 두 번 있는 세일 기간이어서 한 번 가보았다.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그 앞에 아줌마들이 약 50m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다가 문을 염과 동시에 한꺼번에 들이닥치며 혈투 아닌 혈투가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그릇 깨지는 소리와 서로들 더 좋은 그릇을 가지려고 몸싸움을 벌이는데 그 와중에 역시 한국 아줌마들이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00 엄마~"하며 서로들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오사카에 주재하는 사람들의 부인들인 것 같았다. 커다란 박스에 가득히 그릇들을 사서 담는데 다 어디다 쓰려고 그러는지... 단지 일본 그릇이어서 사재기를 하는 것인지... 세일 기간 중에 파는 그릇들은 정품을 조금 가격을 내려서 팔기도 하지만 소위 B품들을 아주 싼 가격에 팔고 있기 때문에 흠집이 있어도 이 회사의 브랜드명으로 가려진다고나 할까. 일년에 두 번, 모두 여섯 번(2월12일 경, 6월 둘째 주 경)을 찾아갔다. 이렇게 간 이유는 '이름 있는 그릇'을 사기 위해서라기 보다 왠지 북새통을 겪어보고 싶어서였다. 무언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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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생활은 어딘가 가슴이 답답한 구석이 있다.무엇이든지 남을 생각해 가며 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 일본인들의 머리 속에 은연중에 박혀 있으니 자기 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가끔은 좀 그러고 싶은데...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살려면 그만큼 자기가 참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곳을 스트레스 해소 장소로 택했던 것이다. 이런 가게들을 구경하며 길을 따라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면 앞 글에서 이야기한 에비스하시가 나오고, 그 옆으로 도톤보리상점가가 동쪽 길로 늘어서 있다. 여러 유명한 음식점들이 있으며, 걷다 보면 길 한가운데 사람들이 주욱 늘어선 곳이 있다. 음식점에 들어가기 위해서 선 줄이 아니라 길 한 귀퉁이의 포장마차에서 파는 타코야키(たこ燒き,문어풀빵)를 사려고 있는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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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야키 가게. 저녁이나 주말이면 이 앞에 길게 사람들이 줄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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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관광 안내 잡지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가게여서 나도 한 번 서서 기다려 보았다. 그러나 실망했다. 풀빵 안에 들은 문어만 다른 가게보다 클 뿐 너무 맛이 없었다. 차라리 그 가게 바로 옆에서 파는 것이 더 맛있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소위 유명한 이 가게는 손님을 뺏길까 싶어서 간판에 '옆 가게와는 관계가 없음'이라고 써 놓았고, 사람들은 이 가게 앞에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데도 옆 가게는 손님이 없어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타코야키 맛을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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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국물이 맛있는 소바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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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비스하시'에서 남쪽으로 두 블록 더 내려오면 여기에 '난바'역이 있으며, '타카시마야(高島屋)'라는 백화점이 있다. 이 근처에서 맛있게 먹었던 소바집이 있는데 바로 내려오던 길가에 있는 '家族亭'이다. 비교적 다른 가게보다는 깨끗하고 우동 국물 맛이 참 좋다. 이 곳에서 동쪽으로 돌아보면 덴덴타운(でんでんタウン)이라는 전자상가로 가는 길이 나온다. 여기까지 오면 너무 피곤해져서 그저 쉬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해진다. 전자제품들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으니 지친 마음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다가 발견한 곳이, 근처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는 센니치마에도구야스지 상점가(千日前道具屋 商店街)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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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덴타운이라고 불리는 전자 상가. 이 길 양 옆으로 약 600M정도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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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용 주방 기구부터 시작해서 주방 도구 일체를 파는 전문 도매 상가로 일본 특유의 그릇들을 한꺼번에 많이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릇과 함께 식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은 '덴덴타운'에 있는 구로몽 이치바(黑問市場)이다. 오래된 재래 시장으로 여기에도 건물과 건물 사이에 지붕을 만들어 놓아 다니기에 편하고, 여러가지 음식 재료를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왠지 시장이 썰렁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계속 가게를 열지만, 사람들은 더 크고 화려하게 만들어 놓은 슈퍼마켓이나 쇼핑센타로 몰리니 시장의 시끌벅적한 이미지는 찾기 어렵다. 이렇게 내가 가 본 곳을 중심으로 몇 군데만 썼지만, 신사이바시에서 난바에 이르는 거대한 상권을 한꺼번에 다 돌아보기란 쉽지가 않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다니다 보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볼거리가 있어서 눈을 즐겁게 한다. 너무 많은 가게들과 너무 많은 먹거리로 정신이 산만해지기도 하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시내 안내 잡지를 사서 보면 도움이 된다. 2週에 한 번씩 발행되는 이 잡지에는 데이트 코스, 주제별 유명한 음식점, 상점가 소개, 문화 전반에 대한 소개 등이 실려있다. 2주에 한 번씩 이런 내용들로 새로운 기사가 실리니 오사카란 곳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면 볼수록 요지경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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